2015년 11월 30일 월요일

설계된 인간(The Schematic Man) - 프레드릭 폴(Frederik Pohl)

플레이보이 SF 걸작선 (The Playboy Book of Science Fiction) 1권에 실린 매우 짧은 단편 작품이다.

10페이지 분량도 되지 않는, 말 그대로 장편(掌篇) 소설이고, 어쩌면 소설이라기 보다는 백일몽이나 스쳐 지나가는 상상 한 조각 정도?

주인공은 컴퓨터를 전공으로 하는 교수.

당시(1969년)에는 컴퓨터의 활용 범위가 복잡한 수학 계산에 주로 이용되었지만, 작가는 자기 자신을 모델링하여 컴퓨터에 입력하고 시뮬레이션 하는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인공지능과 유사하지만, 범용 인공지능이 아닌, 일 개인의 행동 양상을 예측하는 시스템)

동료 교수가 왜 그런 일을 하냐고 묻자, 앨런 튜링의 튜링테스트에 대한 언급을 한다.

이 때 "무엇이 '나'인가?"라는 질문이 나오고, 주인공은 튜링 테스트를 언급하며, 외적인 부분을 제외한다면 나와 시스템을 분간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 공각기동대 극장판에서도 이와 같은 질문이 나온다.
- 무엇이 과연 나를 만드는가. 얼굴, 목소리, 기억......
- 타인으로 하여금 나를 구분하게 만드는 특징은 위와 비슷하겠지. 기억은 바로 그 타인과의 공유하는 기억으로 한정되겠지만....
- 나 자신에게 인식되는 나는?
- 철학적인 문제가 되는가? 종교적인 문제가 되는가? 나라는 본질이 존재하기는 할 것인가?

- 모인사가 말하길,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의 답을 찾고자 한다면,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답을 찾을 것이라 했다.
- 한편으로는 이와 같은 심리적인 작용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비판받기 쉽기도 하지만)
- 흔히들 한국의 주부들이 자가 자신을 누군가에 소개할 때 하는 방식이 이와 같다.
- 남편이 누구고 무엇을 하며, 자식이 몇명이고, 자식들이 무엇을 하며, 시댁이 어떠하고 친정이 어떠하고....
- 어린이들도 마찬가지....아버지가 뭐하고 어머니가 뭐하고 형제관계가 어떻고....
- 하지만 서양의 어린이들은...좋아하는 색깔이 뭐고, 즐겨하는 놀이가 뭐고, 싫어하는 음식이 뭐고....


여튼....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을 시뮬레이션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며, 이상한 증세에 시달린다.
시스템이 완성되어 갈수록 자신의 기억은 점점 사라지게 되는 것.
마치 자신의 기억들이 시스템으로 이동하는 듯한.....

그리고 마침내는 자신 또한 하나의 시스템이 아닐까 하는 의문.
수학적 모델로 표현된 자신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들지만, 그 모델이 완벽해질 수록, 자신과 프로그램의 차이는 줄어들고, 과연 내가 프로그램과 무엇이 다를까라는 자아의 혼란.



이 소설은, 특별한 사건이나 갈등 전개 결론 없는, 그저 상상의 한 조각과 같지만, 읽으면서 자꾸 나를 또 다른 상상에 빠지게 만드는....영감을 불어 넣는 작품이었다.

언뜻,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영원히 곁에 두기 위해, 일종의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만드는 작업도 어렵지만 재미있겠다 싶다. 시스템의 이름은 미믹(Mimic)이면 어떨까?

아마도 이런 시스템이 일반화 된다면, 사람들의 관계가 점점 폐쇄적으로 흘러가서 인간적인 교류가 없는 이상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도 싶다.
어쩌면 이렇게 인류가 멸망하게 될지도....

또...시스템의 발전으로 특정 개인과 매우 흡사해진다면 과연 누가 진짜이고 누가 가짜인지,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을 것이고, 인간 본질에 대한 접근과 성찰이 활발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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